'가상화폐는 진짜 화폐인가'라는 주제로 정규방송에서 전문가들의 긴급 토론이 편성되었고, 이 프로그램은 이례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2020년부터 다시 시작된 가상화폐 랠리 과정에서 이런 논쟁은 대부분 투자자 사이에서 화폐로 인식하기보다는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자산' 정도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금융의 허브 역할을 하는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왔고, 지금 우리의 금융위원회에 해당하는 미국 금융감독당국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독자적인 유권해석에 따라 증권에 해당하는 가상화폐에 대해선 연방 증권거래법에 따라 강도 높은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증권거래위원회(SEC): 증권(Securities)과 그 거래(Exchange)를 규제한다.
미 SEC는 지난 70년 이상 '특정 금융투자상품이 증권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잣대로 '하위 테스트(Howey Test)'라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위 테스트는 1946년 미국 플로리다에 오렌지 농장을 가진 W.J. 하위라는 농장업체가 SEC와 벌인 법정 공방에 대해 대법원이 내린 판결을 준용한 기준입니다.
당시 하위층은 플로리다 오렌지 농장에서 직접 경작해 생산된 오렌지를 내다 팔아 이익을 냈지만, 농장 절반만 직접 소유했을 뿐 나머지 농장 땅 절반은 미국인들에게 쪼개서 분양해 팔았습니다. 이때 농장 땅 절반을 분양받은 개인들은 농장에서 직접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대부분이 투자 목적이었습니다. 이를 간파한 하위층은 더 비싸게 땅을 팔기 위해 투자하는 개인들에게 '농장에서 지배하는 농작물 작황에 따라 수익금을 더 주겠다'는 계약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가상화폐의 증권 여부를 판단하는 하위테스트의 네 가지 기준
ㆍ자금 투자가 이뤄지고 (Investment of money) : 노동력이나 정신적 기여는 투자가 아니다.
ㆍ그 자금이 공동사업에 투자되고(In a common enterprise) : 재단법인이나 발행사도 마찬가지다.
ㆍ투자에 따른 이익을 기대할 수 있고(With an expectation of profit) : 이런 기대가 없다면 투자가 아니다. 기부나 증여이다.
ㆍ그 이익은 타인의 노력으로 발생한다(From the efforts of others) : 투자자 자신의 노력 말고 돈을 모은 제삼자의 노력
으로 이익이 생겨야 한다.
이 부동산 계약에 대해 SEC는 "투자에 따른 수익을 보장한 만큼 증권 투자계약으로 봐야 한다" 면에서 미리 SEC에 증권으로 등록하지 않은 하위층을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고발 조치했습니다. 이 재판에서 연방 대법원도 "하위가 소유한 농장의 수확물 역시 분양된 농장 수익과 연계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를 투자계약 또는 증권으로 볼 수 있다고 판결해 SEC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 유권해석에서 대법원이 증권으로 판단한 하위 테스트의 네 가지 기준은 ① 자금 투자가 이뤄지고 (Investment of money), ②그 자금이 공동사업에 투자되고 (In a common enterprise), ③투자에 따른 이익을 기대할 수 있고 (With an expectation of profit), ④그 이익은 타인의 노력으로 발생한다 (From the efforts of others)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쉽게 이해하도록 돋기 위해 제이 클레이턴 전 SEC 위원장은 한 강연에서 가상의 '세탁기 토큰'을 예로 들어서 설명했습니다. 그는 "옷을 빨기 위해서 세탁기를 돌려야 할 때 동전처럼 투입하는 세탁기 토큰이 있다면 이는 증권이 아니지만, 내년에 오픈하게 될 세탁소에서 쓸 수 있는 토큰을 지금 미리 팔면서 '내년엔 가격이 더 뛸 거야'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면 이는 증권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기준에 따라 SEC는 한때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3위까지 올랐던 리플(Ripple) 사의 리플코인(XRP)을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제소했고, 지금 재판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소송의 본질은 리플을 증권으로 보고 증권법을 적용하느냐 아니면, 증권에 해당하지 않느냐입니다. 만약 SEC가 증권이라고 판단하면 발행사는 SEC에 등록해야 합니다.
리플 소송의 핵심 쟁점은 하위 테스트의 요건 중 '제삼자의 지위'와 수익을 기대하고 자금을 투자한 ' 2차 매매 해당 여부'로 정리할 수 있다. 리플은 XRP가 '중앙화된 제삼자'의 컨트롤을 받지 않기 때문에 증권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최근 리플서가 개인 투자자들에게 XRP를 판매했는지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리플 소송도 새 국면을 맞이한 점이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이 소송은 미국의 가상자산 시장의 방향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하다고 여겨지고 있죠. 한번 판례가 만들어지면 이후에도 계속 레퍼런스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잣대로 이미 발행되어 거래되고 있는 많은 가상화폐도 SEC로부터 언제 철퇴를 맞을지 모릅니다.
아직은 기준 자체가 없지만, 우리 금융당국도 앞으로 SEC의 판단 기준을 따를 가능성이 높은 만큼 투자하기 전에 증권에 해당할 만한 코인이나 토큰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투자를 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상화폐가 증권으로 인정받는다면 그 자체로 주류 금융시장에 편입되었다는 뜻이지만, 그만큼 강화된 투자자 보호 장치나 투명한 공시 강화 등 뒤따르는 책임과 부담도 커진다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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